어젯밤

2014. 4. 16. 08:44 from 카테고리 없음
귀가길에 집 앞에서 아빠를 만났다. 뒤에서 다가가 덥썩 팔짱을 꼈더니 술을 마신 것이 분명한 아빠는 깜짝 놀라 나를 돌아보았다. 아빠의 손에는 양재에서 사왔다는 토마토 한 봉지가 들려있었다. 아빠는 주머니에서 삼 만원을 꺼내 내게 용돈으로 줬고, 토마토 봉지를 벌리며 네 개를 가져가 경비아저씨께 드리라고 했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뒤를 돌아봤을 때, 아빠는 그새를 못 기다리고 또 앞서 걷고 있었다. 나는 얼른 아빠 뒤를 쫓았다.
요즘 부쩍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날이 많다. 세상 모든 사람은 다 죽고 나도 죽고 또 아빠도 죽을 테지. 아빠가 나보다 먼저 죽는다면, 어젯밤의 기억이 문득 생각날 것 같다.
Posted by 노랑 가방 :

 권여선으로 작가론을 쓰기 위해 가장 먼저 읽은 책은 역시 등단작 <푸르른 틈새>였다. 소설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은 소설을 분석할 수 없다고 한다. 그런 맥락에서 작가론을 쓰는 일은 꽤 난항을 겪을 것 같다. 완전히 빠져 읽었고, 마지막 대목에서는 마른 눈으로 조금 울었다.

 잊기 전에 간단한 감상을 적어둔다. 우선 권여선은 감각의 묘사에 능하다. 시각에 관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그녀가 특히 탁월한 재능을 발휘하는 것은 미각의 묘사다. 만일 시각이 아닌 다른 감각으로 그녀의 작품을 읽을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미각을 택할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그녀는 나아가 그 감각과 결부된 욕망을 잔혹하리만치 적확하게 까발려낸다. 그녀가 그려내는 욕망은 육체성을 가진 욕망이다. 그 육체성을 극복하고자 소설 속 인물들은 발버둥치지만, 그들이 확인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은 육체성의 구속이 불가해한 동시에 불가피한 것이라는 사실뿐이다. 그러므로 관념은 물질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고 그녀의 인물들은 비장미 없이 다만 비참할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여선은 나아가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푸르른 틈새>에서 믿음과 희망에 대해 언급하는 결말부는 이후 그녀의 단편 <사랑을 믿다> - 나는 <사랑을 믿다>를 먼저 읽었지만 - 에서도 변주된다. 소설 속 존재는 갈기갈기 찢어지지만 그들의 삶은 소설 너머로 계속 이어지고, 그 질긴 지속을 가능케 하는 힘은 역시 어쩔 수 없는 믿음에 있다. 그러므로 다시 쓰자면 그녀의 소설은 어쩔 수 없음에 대한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존재는 해체되고, 그러나 어쩔 수 없는 믿음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존재는 재정립된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 견고한 힘에 기대어 그녀의 소설은 반짝이는 것이다.

 쓰고 나니까 너무 뻔한 얘기기는 한데, 지나치게 몰입해 읽은 탓에 무언가를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의 작동이 불가능했다고 변명해본다. 몇 가지 더 생각해볼 점은 권여선이 소설 속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법. 추한 것을 정갈한 문체로 세밀하게 묘사할 때 역설적으로 성립되는 권여선의 아름다움. 후일담. 많은 명제. 일반적인 소설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분기점이 존재한다면, 권여선은 그 분기점들의 틈새에 도사리고 있는 일상성과 한계에 천착하는 듯하다. 자위와 자해의 이분법. 또 뭐가 있을까.

Posted by 노랑 가방 :

2주간의 기록

2014. 3. 30. 22:13 from 카테고리 없음

 '아랑은 왜'는 이 질문에 대해 '이야기의 주인은 이야기'라는 답을 내리며 출발한다. 이러한 자신의 주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 김영하는 기존의 소설 형식에서 자꾸만 탈출하고자 한다. 억균과 아랑의 이야기, 박과 영주의 이야기, 작가의 이야기로 구성된 각기 다른 세 세계는 기존에는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작가의 권능에만 기대지 않는다. 독자들은 창작의 과정이 여과 없이 드러나는 세 세계의 묘사 앞에서 끊임없이 작가의 질문에 직면한다.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되어야 옳은가? '아랑은 왜'가 가진 독특한 형식은 독자로 하여금 이야기를 계속 재구성하게 하고 나아가 이야기의 주인이 누구인가를 생각하게끔 만든다. 다소 무력해 보이는 화자와 끊임없이 개입하는 청자 사이에서 이야기의 소유권은 어느 한쪽에도 속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야기의 주인은 이야기다. 한번 생명력을 부여받은 이야기는, 나비가 된 아랑처럼 여기저기로 옮겨 다닐 뿐이다.

'이야기의 주인은 누구인가 - 김영하의 <아랑은 왜>' 중

 

 어디에선가 ‘작가란 지배층 내의 피지배층’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들은 무기 대신 펜을 들어 그들이 소망하는 세계를 구현한다. 이는 실현되지 않은 이상의 세계라는 점에서 패배자가 꿈꾸는 일종의 낭만이다. 체제는 언제나 승자의 세계관만을 존중하고 따라가지만, 기실 역사의 분기점을 만드는 동력은 패자가 꾸준히 간직해온 이상에 있다. 그들의 열망이 폭발할 때에 세상은 비로소 변화한다. 지배층 내의 피지배층이라는 작가들이 가진 낭만 또한 마찬가지다. 낭만은 옳고 체제는 그르다는 이분법적 도덕관을 들이밀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낭만에 의한 체제의 전복을 꿈꾸는 한, 세상은 늘 변화의 가능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바로 그 가능성에 기대어, 우리는 미래를 본다.

'체제에 의한 낭만의 전복 - 김영하의 <보물선>' 중

 

 하지만 이 모든 이야기가 박민규의 재기발랄한 등단작을 깎아내리기 위한 포석은 아니다. 다만, 이것은 우리가 <지구영웅전설>에서 주목해보아야 하는 부분이 어디인가를 알려준다. 이 작품에서 박민규의 미덕은 뻔한 알레고리나 이를 통한 메시지의 전달에 있지 않다. 말하자면 그의 미덕은 언어의 기의가 아닌 기표에 있는 것이다. 강대국이 내세우는 힘의 논리를 비판하기 위해 그가 창조해낸 엉뚱한 세계, 그 세계야말로 박민규가 개척한 그의 고유 영역이다. 그의 영역에서는 슈퍼맨이 펀치를 날리고 배트맨에 ‘마운트’를 한다. 그것들이 상징하는 바는 너무 읽어내기 쉬워서 차라리 유치하다는 생각까지 들지만, 그 세계가 환기하는 이미지만큼은 쉽게 시도된 적 없던 신선함으로 우리를 깨어있게 한다. 이야기의 표면만으로 독자를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은 작가가 가진 또 다른 능력일 것이다.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보기 - 박민규의 <지구영웅전설>' 중

 

 재미있는 것은 타인의 고독이 우리에게 확인되는 과정이다. <갑을고시원 체류기> 속에서, 주인공은 대개 소리를 매개로 타인의 고독을 감지한다. 이를테면 한없이 차갑고 당당해보였던 김 검사가 그렇다. 그의 흐느끼는 소리와 휴지를 찾는 소리 등은 주인공의 그것과 별다를 바 없는 삶의 일상성을 드러내고, 이를 통해 주인공은 김 검사를 비로소 인간으로 생각하게 된다. 물론 이 순간 그가 느끼는 감정은 외로움이다. 타인이 근원적 고독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없다는 인식은 곧 자신을 포함한 인간 보편이 구원받을 수 없다는 깨달음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독으로부터의 구원에 실패한 그 소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을 고독으로부터 위로한다. 주인공이 고시원의 안녕을 바라는 것은 바로 그 소리 때문이다. 고시원은 아무리 조용해지려 애써도 결국 얇은 합판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소리가 들리는 공간이므로.

 공기가 없는 우주 공간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는다. 그러니 소리가 난다는 것은 공기의 존재를, 나아가 삶의 가능성을 입증해주는 일이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은 몸에서 사람의 귀가 자라는 쥐를 보며 ‘내 등 뒤에는 이미 커다란 고시원의 귀가 자라 있을지도 모른다’고 서술한다. 삶은 늘 고독하지만, 어쩌면 우리 등 뒤에 달린 커다란 고시원의 귀가 각자가 내는 <쟁쟁쟁쟁>의 공명을 듣기에, 우리는 살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공유하지 못하는 슬픔의 공유 -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 중

 

 

 매주 한 작가의 두 작품을 읽고 감상문을 제출하는 과제를 수행 중이다. 김영하와 박민규가 지나갔고 이번 주는 성석제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와 <조동관 약전> 차례다. 여섯 작품 중에는 박민규의 <갑을고시원 체류기>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재미있게 읽은 글이어야 감상도 재미있게 쓸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주 성석제의 작품에 대한 감상문은 진도가 안 나가 죽겠다.

바로 전 글에서 문학을 인생의 필연인 양 떠들어놓고, 이제 와 못 쓴 글들을 토막토막 부려놓으려니 민망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성실히 쓰다보면 일말의 발전이라도 있지 않겠나. 선생님께만 보이기는 싫어 여기에도 조금 갖다 놓는다.

 

Posted by 노랑 가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