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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뭐든 빠르게 하는 사람과 뭐든 느리게 하는 사람으로 분류한다면, 나는 아마 전자에 가까운 사람일 것이다. 혼자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빠르고, 함께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느리다. 아마 혼자일 때에는 무언가에 신경쓸 필요가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잦은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빠르게 걷고 빠르게 먹는 데에 어느 순간 익숙해졌다.
대학에 와서 사랑에 빠졌을 때, 상대는 나보다 더 빠른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 밥을 먹고 길을 걸으면 항상 내가 뒤쳐져 그 사람 뒷모습을 쫓게 되었다. 그 등을 보면서 천천히 걸었으면 좋겠다고, 또 천천히 먹었으면 좋겠다고 자꾸만 생각했다. 누구보다 빠른 그 사람이 역설적이게도 내게 느리게 사는 법을 가르친 것이다. 그 때 알았다. 사랑은 함께 있을 때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춰가는 과정임을.
그 사람은 점점 빨라져만 갔고 결국은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만큼 멀어졌지만, 사랑에 대한 나름의 정의만큼은 여전히 마음에 남았다. 이제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면 뭐든 조금 느리게 하고자 노력한다. 손잡는 것도 팔짱끼는 것도 조금 서투른 내게 그것은 사랑을 표현하는 가장 큰 방법이다. 그리고 느리게 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비로소 외롭지 않다.
내게 궁극적인 인생의 목표가 있다면, 그것은 삶을 느리게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혼자 있을 때에도 느리게 걷고 느리게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일 것이다. 삶을 빠르게만 살던 때에 나는 오랫동안 내가 싫었다. 지금도 자기혐오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나는 자신을 사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마주하고 있다. 나는 이제 혼자서도 느리게 가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모두가 더 빠른 것을 원하는 시대이지만 모두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이다. 나는 더 느려질 것이다. 계속 느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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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 자소서 쓰려고 전에 썼던 자소서들 뒤지다가 찾은 캠씨네리 자소서. 저런 말을 무려 자소서에 썼었다니...
이미 티저를 너무 많이 풀어버린 근황 몇 가지.
엊그제는 가평에 다녀왔다. 밤새 마셨고 밤새 노래불렀고 밤새 춤췄다. 춤... 그걸 춤이라고 부를 수 있나? 하여튼 좋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수상레저에 도전해봤는데 덕분에 아직까지도 팔이 좀 아프다. 근래 들어 가장 아무 생각 없이 신나게 마신 듯. 의외로 술 마시면서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이 쉽지 않다. 보통 지루하거나 우울하거나 초조하거나 그런 식인데 이 날은 좀 달랐다. 행복하다는 말이 아깝지 않을만큼 행복했다.
서울로 돌아와서는 동기 언니랑 늦은 점심을 먹고 혼자 검정치마 공연 보러 갔다. 조휴일 라이브 못한다는 얘기를 하도 많이 들어서 기대치가 거의 바닥이었는데 생각보다 잘해서 좀 놀랐다. 사실 조휴일도 좋았지만 관객들이 더 좋았다. 악기 소리까지 떼창하는 걸 보고 조휴일이 오늘 회차 분들은 다들 약 빨고 오셨냐고 해서 다들 웃었다. 끝난 후 인스타 올린 걸 보니 그냥 립서비스는 아니었던 모양. 검정치마 공연은 다른 공연들에 비해 앨범 버전과 공연 버전의 세션 편곡 차이가 유난히 더 크다는 인상이었다. 특히 3집 곡들이. big love 같은 곡은 음원으로 들으면 큰 감흥이 없는데 공연에서는... 내 사랑은! 자로 잰듯이 반듯해! 이 부분에서 조휴일 날아가는 줄 알았다... 앵콜 공연 계획 중인 것 같던데 또 가고 싶다. 하지만 2학기 중이겠지. 망했다.
그리고 어제는 오랜만에 인관심 조원들 만났다. 그 수업 들은 게 벌써 오 년 전인데 아직까지 만남이 이어지는 걸 보면 좀 대단하지 싶다. 전 애인도 오랜만에 봤다. 이번 연애의 종말을 내 주위 사람들이 다 너무 즐거워하며 놀려대서 아 인생 진짜 헛살았구나 싶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열심히 장난을 친 인간들은 단연 나의 전 애인들이다. 어제도 예외는 아니라서 또 실컷 놀림받았고 그럴 때마다 등짝을 때리느라 나중에는 손이 다 아팠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이별 직후의 혼란 같은 것에서 빨리 빠져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내 전 애인들의 공이 가장 컸다. 헤어진 후 오랜 시간이 지나 편안한 얼굴로 다시 마주앉아 서로의 다른 연애 얘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는 모르겠는데 어쩐지 위로가 됐다. 그렇군. 결국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은 나 나나 나 나 나, 같은 것이군.
맞다 갑자기 생각났는데 검정치마의 젊은 우리 사랑 마지막 가사는 확실하게 너가 아니라 나다. 들을 땐 분명 나로 들리는 게 가사집을 확인해보면 너로 되어있어서 좀 실망했는데... (거기서 나가 아니라 너가 나오는 것이라면 그게 대체 무슨 젊은 우리 사랑인가?) 조휴일이 공연에서 제스쳐까지 하며 확실하게 나라는 것을 확인해줬다. 정말로 나는 아무 상관없는 걸 될대로 되고 망해도 좋은 걸, 내가 정말 사랑했던 사람은 나 나나 나 나 나!
젊은 우리 사랑과 모든 1집 곡이 좋았고, 3집에서는 한 시 오 분이 (당연히) 관객 반응이 제일 좋았다. 인터넷상 셋리스트에는 없는 fling 해줘서 깜짝 놀랐다. i like watching you go를 앵콜곡으로 해줬다는 회차도 있었는데 이번은 아니었고 그래서 실망했지만 대신 팀 베이비 투어 중 처음으로 상아를 앵콜곡으로 불러줬으므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른 회차에 갔던 전 애인과 셋리스트 비교해봤는데 차이가 꽤 컸다. 그 회차에서는 러브 이즈 올 불렀다고 해서 엄청 질투할 뻔했으나... 역시 상아로 정신승리를... 의외로 날씨나 외아들 같은 (내 생각에) 마이너해보이는 곡들도 많이 끼워넣었더라. 돈 많이 벌어서 전회차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