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고 싶다

2013. 8. 22. 03:35 from 카테고리 없음


글은 언제나 가장 간절한 비명의 형태여야 한다는, 그런 강박관념이 내게는 늘 있다. 글이란 누구의 말마따나 너무 사랑해서 늘 지고 마는, 그래서 안 쓰고 싶어도 쓸 수 밖에 없는 그런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 동안 나는 무엇도 쓸 수가 없다. 어떤 것에도 간절한 마음을 갖지 못한 지 너무 오래 되었다.

그러나 때때로 먼지처럼 부유하는 나의 세계가 간절해질 때, 나는 그 마음을 글보다 쉽게 구할 수 있는 술로 흩어놓는다. 문득 내가 글을 쓰지 못하게 된 것은 내가 술을 합법적으로 마실 수 있게 된 시기와 맞물리는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술을 마시면 못다 지른 비명은 이내 사그라든다. 타다 만 소망들이 재가 되어 내 목구멍을 막아 나는 이제 숨을 쉬기가 어렵다.

오늘은 내가 소년이던 시절 썼던 글들을 찾아 읽었다. 활자화된 비명은 처절하고도 아름다웠다. 나는 내일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고도 썼고 클리셰 같지만 정말로 글과 결혼하고 싶다는 말도 썼다. 좆같다고도 썼고 사랑한다고도 썼다. 좆같은 너를 사랑한다고도 썼다. 훌륭한 소년이 되지 못한 채 내 소년 시절은 토막난 글처럼 끊겨 버렸다. 이제 나는 좆같은 사랑이 뭔지 이해할 수조차 없고, 소년 시절의 나는 생경한 모습으로 활자 안에 박제되어 나를 노려본다.

나는 그저 관성처럼 살아가고 있다. 죽고 싶다는 마음은 오랜 시간 나를 지배했지만 이제는 그 마음조차도 소망하지 않는 인간이 되어버렸다. 구하는 바가 없으니 글을 쓸 수도 없다. 비참함이 찾아올 때면 몇몇 타인과 신변잡기를 안주삼아 술을 마신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이런 것인가.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 글을 쓸 수 있던 당시에는 미처 몰랐다.

다시 글을 쓰고 싶다. 소망이 생긴다면 모두 태우고 싶다. 이제 숨을 쉬고 싶다. 살아지는 것이 아닌 살아가는 것을 택하고 싶다.


Posted by 노랑 가방 :